"마지막을 '아픔'으로 기억하지 않길"
유가족 위로하는 예술가들

감염병에 가로막힌 이별의 시간. 외롭게 떠난 고인과 남은 사람들의 아픔을 어떻게 보듬을까? 그들을 위해 사회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박혜수 작가는 코로나19 시대 예술의 역할을 고민했고, 그 결과 코로나 사망자 애도 프로젝트 ‘늦은 배웅’이 나왔다.
성유진 작가는 유가족 사연이 담긴 부고의 그림을 그렸다.
두 예술가는 상실의 아픔에 소리 없이 울고 있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사회가 이들에게 관심을 가져줄 것을 당부했다.

유가족 아픔에 반응하는 예술가

(코로나 고통 속에)존재하는 사람들을 마치 없는 사람인 것처럼 바라보는 시선 거기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싶었고 이 프로젝트를 통해 유가족을 비롯한 확진자들에게는 위로가 됐으면 좋겠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해야 할 일이 있다는 숙제를 주고 싶었어요.

박혜수 작가는 개념미술과 설치미술 작업을 주로 해왔다. 코로나로 멈췄던 예술계가 올해 다시 전시를 시작하면서 재난, 치유, 위로라는 주제가 떠올랐다. 부산시립미술관 기획전 ‘이토록 아름다운’ 참가 제안을 받은 박 작가는 재난 상황 속에서 사회에 필요한 작업을 하고 싶었다. “감정적으로 많이 힘든 작업이라서 좀 망설였어요. 그런데 아무도 안 하는 거예요. 저는 자꾸 그 사람들이 눈에 밟히는데 말이죠.”

코로나 때문에 임종을 지키지 못하고 생략된 장례를 치를 수밖에 없었던 유가족의 사연을 모아 부고를 내고, 그것을 미술관에 전시해 사회적 애도를 끌어내고 싶었다.
“스웨덴 신문에서 부고를 봤는데 작은 그림을 넣고, 고인을 향한 유가족의 애틋한 마음을 짧은 글로 담았더라고요. 그걸 보니 모르는 사람인데도 애도가 됐어요.

박 작가는 구글폼 온라인 설문과 손편지로 유가족이나 지인의 사연을 모았다. 유가족들이 SNS에 남긴 애도의 글을 찾아서 개별로 메일도 보냈다. 답변이 돌아오는 확률은 20% 정도에 그쳤다. 나머지 80%와 SNS도 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대로 슬픔을 꾹 참고 있다는 뜻이다.

코로나 사망자 애도 프로젝트 ‘늦은 배웅’.코로나 사망자 유가족이 보낸 사연들이 부고와 포스터로만들어져 부산시립미술관에서 9월 12일까지 전시된다.

김경현 기자

박혜수 작가의 ‘꽃이 지는 시간’이 부산시립미술관에전시되어 있다. 이 작품은 유가족이 보지 못한임종의 시간을 표현했다.

김경현 기자

박 작가는 특히 코로나 확진 사망자 유가족의 죄책감이 크다고 했다.
“죄책감이 저 정도일까 생각할 정도로 마음의 짐이 크시더라고요. 코로나 사망자들은 마지막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잖아요. 확진되고 1주일 만에 돌아가신 분도 있어요. 전혀 준비가 안 된 상황에서 이별하게 된 거죠.”

명복 비는 마음 담은 손 그림

포개진 두손에는 고인의 명복을 비는간절한 작가들의 바람이 담겼다.

그림=성유진 작가

어머니의 분홍색 스웨터, 군복이 잘 어울린 남동생, 아들 결혼식에서 색소폰을 연주한 남편…. 성유진 작가는 유가족이 보내온 사연을 그림으로 옮겼다.
“경건하게 그려야 할 것 같은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지더군요. 각 사연은 슬프지만, 유가족이 기억하는 고인에 대한 이미지는 추억을 품고 있었어요.”

성 작가는 전달받은 사연에서 고인이 좋아했던 것, 잘했던 것 같은 긍정적 이미지를 찾아내서 손 그림으로 표현했다.
고 정유엽 군의 어머니는 부고 속 ‘우애 좋은 삼 형제의 뒷모습’이 실제 유엽 군 삼 형제가 함께 다닐 때 모습과 닮았다고 했다. 고 박행자 님의 손녀 김민귀 씨는 할머니 그림이 ‘우리 할머니를 아는 분이 그린 건가’ 싶을 정도로 닮아 깜짝 놀랐다고 했다.

부산시립미술관에 '늦은 배웅' 프로젝트의 일환으로<부산일보>에 실린 코로나 사망자의 부고가 전시되어 있다. 부고에 들어간 성유진 작가의 그림.

오금아 기자

성 작가는 “코로나 시대는 작가들에게 여러 의미를 가집니다.가끔 코로나로 인해 일어난 상황들에 숨이 막힌다는 느낌을받을 때가 많습니다”라고 말한다.

강원태 기자

성 작가는 유가족들이 자책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그분들이 혼자 슬픔을 짊어지게 해서는 안 돼요. 유가족이 자기 이야기를 꺼내 놓고 자신의 감정을 돌아볼 수 있다면 조금이라도 마음이 가벼워지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를 위해서는 유가족이 말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그분들이 슬픔을 표현할 수 있게,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꺼내 놓을 수 있게 배려하는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할 것 같아요. 유가족이 고인을 슬픔으로만 기억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부산시립미술관에 전시된 ‘글루미 먼데이’.박혜수 작가가 <부산일보> 월요일 신문으로 제작한 작품이다. 코로나 시대의 뉴스 기사를 오르골 음악으로 바꿔서 들려준다.

김경현 기자
우리가 함께해야 할 ‘늦은 배웅’

“유가족분들을 처음 만나면 다들 ‘괜찮다’고 하세요. 그런데 실제로 이야기를 해보면 그렇지 않아요. 그분들의 아픔을 듣기만 하는 입장인데도 그렇게 힘이 들더라고요.”
박혜수 작가는 유가족의 사연들이 너무 안타까워 마음이 아팠다. 그는 생판 모르는 자신에게 고인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유가족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풀리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신문에 부고가 나가면 문자나 메일로 보내드려요. 그러면 고맙다고, 이렇게라도 사람들에게 나눌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고 하세요.”

부산시립미술관에 전시 중인박혜수 작가의 작품 ‘오아시스 제단’. 코로나만 아니었으면 고인의 장례를 치르며오아시스에 꽃을 꽂고, 유가족을 위로하는 시간을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박 작가는 코로나 사망자 유가족뿐 아니라 의료진, 요양보호사, 장례지도사 등도 심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사망자가 나온 요양원 직원들도 우리가 죄인이라는 생각을 갖고 계시고, 장례지도사는 유가족의 마지막 인사를 막았다는 것에 미안함을 느끼세요. 그분들에게도 위로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아픔을 소리 내어 울지 못하고 참고 있는 사람들을 외면하면서계속 앞만 보고 간다면 이런 전염병은 또 일어날 텐데그때는 나도 대상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인데 유가족분들보다는우리가 해야 할 일이 더 많다는 거죠.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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