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 제3의 코로나'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스쳐간 사스·메르스와는 달랐다. 코로나19는 해를 넘겨서도 일상을 옥죄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에서 ‘위드 코로나’를 이야기하고 있다. 인류 공동의 위기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코로나 바이러스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악몽에서 깨어나려면

우리가 좀 침착하게 따뜻하게 그리고 처음 아픈 사람에게 진심으로 감사할 수 있는, 당신이 아프니까 우리가 경각심을 갖고 조심하는 거 아니에요. 그런 사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크리스마스 악몽 같았다. 2020년 12월 27일. 정신장애인 재활병원인 대구 나눔연합의원 회원 중 첫 코로나 환자가 발생했다.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부터 열이 나기 시작했다고 했다.
병원은 폐쇄됐다. 전수 검사 결과 확진자가 몇 명 더 나왔다. 2주간의 자가격리가 끝나고, 재검사에서 이번엔 10명 가까이 추가 확진자가 나왔다. 최진옥 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도 양성 판정을 받았다.

병원에서 발생한 첫 코로나 확진자 덕분에 병원이코로나를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대구 나눔연합의원 최진옥 원장

모두들 처음 겪는 일. 병원은 마비됐다. 코로나에 걸린 이는 혹시 자신 때문에 병원에 코로나가 퍼진 건 아닐까 죄책감에 시달렸다. 직원 중 2명은 결국 사직했다. 음성이었고 환자와 마주친 적도 없지만 ‘집에서 반대한다’고 했다. 매일같이 출석하던 회원들도 10% 정도 발길을 끊었다.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전체 모임에서 얘기했어요. 우리가 코로나에 대해 잘 모를 때 첫 환자가 나와서 미리 경고를 해줬으니 그 사람은 선한 역할을 한 거라고요. 코로나 검사를 조기에 모두 받은 덕분에 사태를 빨리 끝낼 수 있었던 셈이죠.”

중증뇌성마비였던 첫 확진자는 코로나에 걸리기 전까지 집과 병원만 오가는 게 하루 일과의 전부였다. 최 원장은 그를 외면하지 않았다.

“코로나 확진자 수가 지극히 적기 때문에 이들을 갈라치기 해도 이 사회에 큰 문제는 없습니다. 하지만 격리당한 이들이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낼지 한 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일을 겪은 뒤로 의료 인력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어요.다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주변에서 오는 압박이 적지 않았죠.

코로나19가 현재진행형인 와중에도 최 원장은 코로나 이후 제2, 제3의 위기를 생각하고 있다. “전 국민의 엄청난 희생 속에 우리 사회가 이만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런 국가, 이런 국민이 어딨나요. 국민들이 서로 따뜻하게 격려해줬으면 합니다. 코로나로 큰 슬픔을 당한 유가족도 있고, 합병증 때문에 고생한 이도 있고, 아직 치유 과정에 있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들을 위해서라도 코로나에 대해, 그리고 앞으로 닥쳐올 다른 바이러스 공격에 온 인류가 따뜻한 마음으로 합심해서 이겨내야 합니다.”

제2의 코로나에 대비해

확진자 62명. 지난해 3월 3일. 경북 경산시에 코로나 확진자가 폭증했다. 경산 임당역에서 대구까지 지하철로 28분. 대구에서 확진자가 늘자 경산도 따라서 늘었다. 안경숙 경산시 보건소장은 확진자 발생 전부터 직원들에게 입버릇처럼 당부했다.
“언젠가 우리에게도 코로나가 올 것이다. 우리는 경북 경산시가 아니라 대구 경산시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대구에 확진자가 생기면 우리 확진자 수도 언제든 폭증할 수 있다.”

불길한 예감은 현실이 됐다. 2월 첫 환자가 생긴 뒤 한 달도 안 돼 확진자는 불어났고 환자들은 병원을 찾아 대구로 이송됐다.

마스크 한 장 구하기 힘든 상황에서 저희 환자 이송도 못 해서생활치료소가 처음에는 없었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그분들은 양성인데도 불구하고집에서 대기하고 있는 상황인거에요. 정말 너무너무 힘들지만 밤늦게까지도 하고

하지만 관심은 없었다. 전국의 관심은 오로지 대구와 청도였다. 관심은 지원 규모를 의미했다. 마스크, 방호복, 손 소독제 등 방역용품을 구하기 어려웠다. 정부의 지원 인력 없이 보건소 직원들이 직접 역학조사에 나섰다. 새벽 1시까지 선별진료소를 운영하며 확산세를 잡으려 안간힘을 썼다. 인근 대구 사람들도 경산 선별진료소로 몰려왔다.

코로나와 방역 현장에서 싸우고 있는 경산시 보건소 안경숙 소장은 ‘잘못된 정보’가 코로나보다 더 두렵고 무섭다.

경산시 보건소 안경숙 소장

안 소장은 전염병 베테랑이다. 사스, 메르스를 모두 방역 일선에서 경험했다. 전염병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다.
하지만 코로나는 조금 달랐다. ‘잘못된 정보’가 쏟아졌다. 백신 부작용에 대한 확인되지 않은 뉴스의 확산이 코로나 확산보다 거셌다. 사람들은 백신 접종을 기피했다. 비말전염과 공기전염에 대한 잘못된 정보도 현장의 혼란을 낳았다. 비말전염을 막기 위해 높은 단계의 마스크를 쓸 필요는 없지만 시민들 모두 고성능 마스크를 찾았다. 정작 의료 현장에서 마스크 품귀 현상이 빚어졌다.

안 소장과 같이 최일선 현장에서 일하는 의료진들은 감염병이 생길 때마다 지원을 호소한다. 인력과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한 탓이다. 2015년 메르스가 확산할 때에도 의료 인력 충원 이야기가 나왔지만 경상북도에 의사 출신 보건소장은 3명에 불과하다.

“시민들이 질문하고 해답을 받을 곳이 없기 때문에 인터넷이나 가짜뉴스에 의존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역학조사관 한 명을 양성하는 데에도 몇 년이 걸립니다. 우리는 제2, 제3의 코로나를 지금부터 준비해야 합니다.”

함께 극복하는 ‘위드 코로나’

국립부곡병원 영남권트라우마센터의 안심버스는 코로나 피해자들의 마음의 소리를 듣기 위해 영남권 구석구석을 누빈다.

안심버스

코로나 완치자인 A 씨는 오랫 동안 해오던 장사를 그만두고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했다. 앰뷸런스가 집 앞까지 와서 자신을 데리고 병원으로 갔다. 그 후로 옆 사람이 쳐다만 봐도 ‘왜 나를 저런 눈으로 보지?’하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코로나는 완치됐지만 트라우마는 남았다.

60대 확진자 B 씨는 저녁 9시 이후 골목길을 산책한다. 사람을 마주치는 게 두려워서다. 가장 힘든 순간은 눈치를 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다. 기침만 해도, 조금만 몸이 추워도, ‘재발한 게 아닐까?’ 불안감이 엄습해온다. 죄책감, 불안감은 코로나 완치자들의 후유증이다.

사회적으로 유가족분들에 대한 지원이나 장례나 임종 참여 같은 것들에 대한 지원이 좀 더 쉽고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계속 보완해가야 할 것이고

“코로나는 재난입니다. 바이러스 병원균이 눈에 보이지 않아 대처가 쉽지 않은 점, 사회적 혼란이 발생하고 있는 점, 불특정 다수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점에서 사회적 재난으로 봐야 합니다.”

국가트라우마센터 이다영 위기지원팀장은 코로나가 사회적 재난인 이유를 차분히 설명했다. 코로나 확진자와 유가족이 겪는 심리적 압박감은 대형 재난 피해자들이 겪는 트라우마와 유사하다.

가장 걱정스러운 건 피해자를 향한 ‘특별 취급’이다.
유가족의 당연한 애도 시간을 빼앗고, 코로나 확진자에게 보내는 따가운 시선들.

지난해 1월 29일부터 올해 8월 9일까지 코로나 확진자, 코로나 사망자 유가족, 의료진 6만 4093명이 국가트라우마센터에 상담을 청해왔다.

(전화를 받으시면)지금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필요로 할 때 연락을 하시겠다 하시는 분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냥 나는 지금 힘들기 때문에 말 시키지 마세요이야기 시키지 마세요 하는 거 자체가 덮어둔다는 느낌이 들어서 안타까워요.

매달 수백 건의 상담으로 코로나 피해자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전문가들은 그럼에도 피해자들의 눈물에서 희망을 만난다. 상담자가 눈물을 흘린다는 건 마음을 털어놓고 감정을 공유했다는 의미다.

국립부곡병원 영남권트라우마센터 김영천 정신건강전문요원은 “피해자분들을 대할 때 그냥 흘려보내시라고, 다 지나가는 일이라고, 괜찮다고 말씀드린다”며 “상담하시는 분들이 혼자 견디려 하실 때, 그 상황을 덮어두는 느낌이 들 때 가장 안타깝다”고 했다.

김영천 정신건강전문요원은 코로나 피해자들이 털어놓는 이야기에 함께 눈물 흘린다. 눈물은 코로나 피해자들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치유되고 있다는 의미다.

김영천 정신건강전문요원

‘위드 코로나(with covid19)’. 코로나라는 재난과 함께 살아간다는 의미다.
갈 길은 멀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피해자를 ‘특별하게’ 대하고, 그들의 눈물에 냉소적이다. 감염에 대한 불안과 이웃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한 ‘위드 코로나’가 아니라,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에 함께 극복할 수 있다는 의미의 ‘위드 코로나’.
코로나 확진자와 유가족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의료진들은 ‘위드 코로나’를 위해 오늘도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또 듣는다.

김준용 기자 jundrag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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