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검사만 14번...
막내아들과의 이른 작별

유엽이는 코로나로 오인받아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서 끝내 사망했습니다.유엽이 마지막 보는날 처참하게 부어있는 유엽이 얼굴이 너무나 충격적이었습니다.저렇게 힘들게 혼자 버텼던 아들에게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어서 너무 미안했습니다.

열일곱 살에 멈춰버린 아들의 시계.
정성재(54)·이지연(52) 씨의 막내아들 정유엽 군은 2020년 3월 18일 오전 11시 16분에 사망했다.
코로나19가 부른 ‘의료 공백’. 고열과 폐렴 증상을 보인 유엽 군은 코로나 감염자로 의심받아 적절한 치료 시기를 놓쳤다.
미래에 대한 꿈이 가득할 ‘고3’ 이었다. 유엽 군은 너무 빨리 세상과 작별했다.

우리 엽이는 참 착한 아들

집 거실에 놓인 정유엽 군의 사진. 오른쪽 작은 액자는 유엽 군 삼 형제의 어린 시절 모습. 이지연 씨는 매일 아침 유엽 군의 사진에 뽀뽀를 해준다.

오금아 기자

유엽이는 엄마 아빠에게 참 착한 아들이었다.

유가족 제공
14번의 검사

엽이랑 아빠가 마스크 사는 날이 같았거든요.

마스크 5부제가 시행되던 지난해 3월 10일. 오전에 몇 군데 약국에서 허탕을 친 유엽 군에게 엄마 이 씨가 전화를 했다.
“오후에 문을 여는 곳이 있다는데 어쩔래? 하니까 ‘엄마, 컨디션은 조금 안 좋은데, 갈게요’ 하더군요.” 암 환자인 아빠를 위해서도 마스크가 필요했다. 유엽 군은 가랑비를 맞으며 약국 앞에 1시간 가까이 줄을 서 공적 마스크 2장을 샀다. 그날 저녁부터 열이 나기 시작했다.

아들은 운동을 좋아했고 건강했다.
“항상 아빠가 걱정이었지 엽이가 걱정은 아니었어요.” 당시 방역지침대로 약을 먹고 지켜보기로 했다. 이틀 뒤 유엽 군은 열이 41.5도까지 올랐다.
“경산중앙병원에 데려갔는데 선별진료소가 6시에 문을 닫아 응급실 밖에서 약만 처방받았어요.” 13일 오전 병원을 찾아 코로나 검사를 하고, 차 안에서 링거를 맞고 귀가했다. 열이 계속 떨어지지 않아 답답한 마음에 1339·보건소에 전화도 해봤다. 오후에 다시 경산중앙병원에 갔더니 상태가 위중하다며 상급종합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구급차 제공도 안 된다고 해서 아빠 차로 영남대병원에 갔는데 코로나가 의심된다며 검사를 계속하더군요.” 유엽 군은 3월 18일 사망 때까지 총 14번의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
“마지막 보는 날 처참하게 부어 있는 유엽이 얼굴은 너무나 충격적이었습니다(2021년 3월 18일 정유엽 군 1주기 추모제 때 이지연 씨 발언).” 이 씨는 그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난다.
“힘들고 무서웠을 텐데 엽이가 혼자 견뎠을 걸 생각하니 너무 마음이 아픈 거예요.”

<정유엽 군 투병 일지>

“내가 불러내지 말걸. 다른 애들처럼 싫으면 싫다고 이야기도 하고 그래야 하는데.” 유엽 군은 너무 착했다.
음식물 쓰레기도 자기가 다 버리고, 시키지 않아도 빨래 끝나는 소리가 들리면 세탁물을 꺼내 종류별로 착착 펴서 널었다. 식당을 운영하는 이 씨가 저녁 차리기 힘들어서 누워 있으면 라면을 끓여서 들고 왔다.
“엽이가 라면에 김치를 넣고 끓여주는데 정말 맛있어요.”

여행을 가도 자기가 제일 무거운 가방를 끌고, 먹을 것이 생기면 다른 가족을 먼저 챙기는 아이. 유엽 군은 늘 남을 배려했다.
“제가 좋아하는 노래를 반복해서 듣거든요. 한번은 길에서 만나 차에 태웠더니 제가 좋다고 한 임영웅의 ‘바램’을 자기 휴대폰에서 찾아 무한반복 시켜주더군요.”
그게 아들이 엄마에게 틀어준 마지막 노래다.

“엽이가 알뜰폰에 요금제도 싼 걸 쓰는데 할머니가 새 폰을 사주기로 하셨나 보더라고요. 병원 가기 전 마지막에 만난 친구한테 ‘핸드폰 산다’고 자랑을 했다네요.”
새 휴대폰을 사러 가기로 했던 날 아들은 세상을 떠나 버렸다. “그래서 할머니가 맨날 마음 아파해요.”

고 정유엽 군의 묘지 사진.유엽 군 어머니의 지인이선물한 모자상이 놓여 있다.뒤쪽의 강아지는 유엽 군이 세상을 떠나고 난 뒤 데리고 온 잼잼이.

유가족 제공

유엽 군이 떠난 후 이 씨는 집안 곳곳에 모자상을 놓았다.
“아시는 분이 엽이 무덤에 모자상을 놓아주시는데 너무 마음이 편안한 거예요. 그 뒤로 공방에 혼자 찾아가서 계속 모자상을 만들었어요.”

유엽 군은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매일 아침 엄마한테 뽀뽀를 해줬다.
“엽아, 알고 있지? 지금 엽이는 없지만, 아침에 일어나면 엄마는 항상 너한테 뽀뽀해 주는 거 알고 있지.” 이 씨가 거실에 놓인 유엽 군 사진을 보며 말을 건넸다.

“막내니까 좀 더 엄마의 사랑을 받고 싶은 것이 있었나 봐요. 형들하고 비교하며 ‘엄마, 내가 제일 못생겼지’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엄마는 니(너) 제일 좋아한다’고 일단 치켜세워주는 말을 했는데, 평소에 그냥 사랑해 소리를 많이 못 해준 것 같아요.”

우리는 영원한 삼 형제

‘늦은 배웅 프로젝트’로 2021년 5월 7일 자<부산일보>에 실린 정유엽 군의 부고

그림=성유진 작가

이 씨는 아들 셋을 편하게 키웠다고 했다. 유엽 군 삼 형제는 서로서로 챙겼다. 큰형 정서우(26) 씨에게 일곱 살 터울의 막내는 그저 귀여운 존재였다.
“제가 학교 때문에 울산에 있는데 집에 간다고 하면 ‘형 언제 와? 마중 나가 줄까’ 그러던 아이였죠. 저랑 손잡고 다닐 정도로, 고등학생인데도 아기 같았어요.”

큰형이 아르바이트로 번 돈은 대부분 막내에게 들어갔다. 서우 씨는 동생을 잃고 슬퍼하는 엄마 이 씨를 위로했다.
“엄마, 엽이 시내에 데려가서 맛있는 것도 많이 사주고 했으니까, 그렇게 엽이 안 행복하지는 않았다.”

작은형 정상호(23) 씨는 유엽 군의 롤 모델이었다. ‘팔씨름왕’인 작은형처럼 되고 싶었던 유엽 군은 친구들과 늘 팔씨름을 했다. 안경도 옷도 신발도 형이 좋아하는 브랜드를 따라 샀다. 상호 씨가 군대에 간다고 머리를 밀었을 때 다른 가족들이 놀렸더니 다음날 고등학생인 유엽 군이 삭발을 했다. 형 혼자 머쓱할까봐 자기도 머리를 빡빡 밀고 배시시 웃으며 나타난 유엽 군의 모습에 온 가족이 깜짝 놀랐다.

고등학생인 정유엽 군이 군대 가는 작은형을 따라 삭발했을 당시의 모습.

유가족 제공

유엽 군은 작은형을 따라 한국해양대에 진학하고 싶어 했다. ROTC에 들어가서 해군 장교가 되어 국가에 봉사하겠다는 것이 유엽 군의 꿈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지금 같은 학교에서 수업을 함께 듣고 있겠죠.” 막내를 떠나보낸 뒤 집에 온 상호 씨는 유엽 군의 책상을 봤다. 해양대 진학을 위해 읽어보라고 자신이 추천한 책이 올려져 있었다.
“마음이 많이 아팠어요.”

한 침대에 모여 종알종알 이야기하다 잠이 들고, 우르르 노래방에 몰려가던 사이좋은 삼 형제.
형들은 “스무 살이 된 막내와 함께 술을 마시는 날이 올 것을 기대했다”고 말했다.
서우 씨와 상호 씨는 유엽 군을 영원히 마음속에 담아둘 것이라고 했다.
“늘 보고 싶은 동생이죠. (우리가) 영원한 삼 형제라고 생각해줬으면 좋겠어요.”

하늘에서도 넉넉하게 빛나렴

유엽 군의 아빠 정성재 씨는 여행을 하며 아들이 어떤 미래를 꿈꾸는지 이야기를 듣곤 했다.

유가족 제공

넉넉할 유(裕)에 빛날 엽(燁). 아빠 정 씨는 유엽 군을 ‘유럽’으로 불렀다.
“유럽에 진출하라는 뜻에서 유럽, 유럽이라고 별명으로 많이 불렀죠.” 정 씨는 유엽 군에게 엄한 아빠였다.
“어릴 때 할아버지·할머니 손에 자라다 보니 자기만의 주장이 너무 강해서 저한테 엄청 혼났죠.”
야단도 쳤지만, 혹여 아들이 위압감을 느꼈을까 여행을 다니며 대화도 많이 나눴다.

“여행을 통해 유대감도 생기고, 잔잔한 정을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일본 규슈 유후인에 가족여행을 갔을 때였다. 가게에서 유엽 군이 모자를 써보더니 “아빠 이거 어때”라고 말했다.
정 씨는 그 모습을 사진에 담았고, 이 사진은 아들의 영정사진이 됐다.
“더 많이 보여주고 싶고, 같이 경험하고 공유할 것이 많은데 유엽이가 너무 앞서갔죠.”

<노래 부르기를 좋아했던 故정유엽 군.>

유엽 군은 노래를 잘하고 좋아했다.
“아침에 샤워하면서 한 시간씩 노래를 부르는 거예요.”
이 때문에 유엽 군은 학교가 아파트 바로 옆에 있는데도 지각을 자주 했다.지각 벌점을 받았지만, 선행 점수로 다 만회했단다.

“지난 3월 열린 추모제 때 날씨가 정말 추웠는데 친구들이 끝까지 자리를 지켜줬어요. (유엽이가) 친구들한테 인정을 받기는 했구나, 외롭지는 않았겠다고 생각을 했죠.” 그 친구 중 한 명은 지금도 유엽 군 엄마의 가게를 찾아온다.

정 씨는 유엽 군의 성장을 지켜보며 뿌듯함을 느꼈다고 했다.
“제가 아픈 이후로 항상 무거운 것은 자기가 들더군요. 저 녀석이 몸만 자라는 것이 아니라 정신도 성숙해지는구나. 사회 구성원으로 모나지 않고 더불어 살아갈 수 있겠구나 싶었죠.”
아빠는 그런 아들의 부재가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저한테 더 좋은 마스크, KF94 마스크를 주려고 줄을 섰다가 세상을 달리하게 된 거잖아요. 그래서 아픔이 더하죠. 한순간에 없다는 걸 느끼면 진짜 보고 싶어요.”

정성재 씨는 유엽 군과 같은 비극이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지난 2월 22일부터 3월 17일까지 경산중앙병원에서 청와대까지 도보 행진을 했다.

유가족 제공

정 씨는 올 2월 22일부터 3월 17일까지 떠나간 아들을 위해 천릿길을 걸었다. 경산중앙병원에서 청와대까지 도보 행진을 하며 ‘의료공백 재발 방지를 위해 의료공공성을 강화하고 공공병원을 확충하라’고 외쳤다.

“유엽이 경우를 보면 선별진료소, 응급의료, 구급차 이용, 시·도간 전원 같은 현재 공공의료 체계의 문제점들이 다 담겨 있어요. 백신도 나오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코로나는 종식되겠지만 이게 끝은 아니지 않습니까? 다른 감염병이 생겼을 때 우리 유엽이 같은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정부가 공공의료에 대해 투자를 해서 누구나 평등하게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의료체계가 갖춰지기를 바랍니다.”

아빠는 마지막 순간 아들에게 더 따뜻한 말을 건네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제가 안경을 벗겨줄까 하니까 유엽이가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더군요. 더 따뜻한 말로 한마디를 던져줬더라면 이렇게 아쉽지는 않을 텐데. ‘치료 잘 받아’ 한마디만 한 것이 못내 아쉽죠.”

고 정유엽 군 어머니의 친구가 그린 유엽 군 초상화.이지연 씨는 막내아들 정유엽 군이 세상을 떠난 이후시간이 날 때마다 흙을 주물러 모자상을 만든다.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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